<우물의 사람>

*아브라함과 이삭의 우물을 막아버린 블레셋 사람들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에서 블레셋 사람들에게 우물을 빼앗기고 척박한 땅으로 쫓겨났던 이삭이 도리어 더 큰 복을 경험하게 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우물들과 관련된 갈등은 아브라함 때에도 복사판처럼 반복되었던 사건입니다. 창세기 20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세겜에서 그랄로 내려갔던 때에 그랄의 왕이었던 아비멜렉이 아브라함과 서로 언약을 맺었지만, 아브라함이 부강하게 되자 블레셋 사람들이 아브라함이 살던 지역의 우물을 다 막아버리고 아브라함을 블레셋의 가장 변방으로 쫓아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가는 곳마다 계속해서 우물을 얻게 하셨고, 결국 블레셋의 왕 아비멜렉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함께 하심을 인정하여 다시 아브라함을 찾아가 화해 언약을 맺었습니다. 이 때,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에게 일종의 조공을 바치는데, 아비멜렉에게 보내는 가축 중에 암양 일곱 마리를 다시 골라냈습니다. 그러자, 아비멜렉이 일곱 암양을 따로 구별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는데, 아브라함은 “당신의 백성들이 나의 우물을 다 막아 버렸으나, 하나님께서 내게 계속해서 우물을 주사 이 언약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하기 위하여 이 일곱 암양을 여기서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그가 사는 땅의 이름을 브엘세바, 곧 일곱의 우물이라고 지었던 것입니다. 이후로 블레셋 사람들은 아브라함을 브엘세바의 아브라함이라고 불렀으며, 이는 우리 말로 ‘우물의 사람, 아브라함’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오늘 26장 18절을 보니, 아브라함이 죽은 이후, 블레셋 사람들을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을 다 막아버렸습니다. 그리고 이후 똑같은 일이 다시 반복됩니다. 이삭은 아버지가 팠던 우물부터 시작해서 계속해서 우물을 팠으며, 블레셋 사람들은 아브라함 때와 같이 이 모든 우물을 다 막아버렸습니다. 하지만, 이삭은 계속해서 우물을 팠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샘의 근원을 허락해서 블레셋의 왕 아비멜렉이 아브라함과 언약했던 것처럼, 또 다시 이삭과 언약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삭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것처럼 아버지 덕으로 편하게 신앙 생활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삭이 승리했던 것은 그의 편안한 형편 때문이 아니라, 그가 아버지와 같은 믿음을 지켰고, 또한 하나님께서도 그에게 당신의 은혜를 나타내셨기 때문입니다. 이삭이 마지막으로 판 우물의 이름을 세바라고 하여, 그가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여정을 이 땅에서 보냈음을 확인해주고 있습니다.

 *우물이 막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환영하지 않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신앙을 지키고 교회를 세워 나갈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물은 광야에서 가장 소중한 재산입니다. 사실 그것은 얻고 싶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땅 속에 흐르는 물줄기를 정확히 가늠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누군가 광야에서 우물을 발견했다면, 이것은 정말 축하하고 함께 기뻐할 만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 소중한 우물이 아브라함 때부터 이삭 때까지 계속해서 막히고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확인한 것처럼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아브라함과 이삭이 이 땅에서 사라지기 바라기를 바라며, 그 우물에 흙과 쓰레기더미를 부어 막은 것입니다. 수원이 마른 것도 아니고, 물 길이 바뀐 것도 아니며, 세월이 지나 모래 바람이 덮인 것이 아니라, 이들이 고의적으로 우물을 막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과 이삭은 어떻게 했습니까? 막혀 버린 우물들을 다시 팠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계속해서 우물을 매웠지만, 우리 믿음의 조상들은 계속해서 우물을 다시 팠습니다. 그리고 우물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교훈>

저는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분명히 받아야 할 교훈이 있다고 믿습니다.

*모든 신자들에게는 저마다의 영적 싸움이 있다

무엇보다 우리는 요행을 바라거나 혹은 지나간 시절을 아무 근거 없이 부러워하는 일을 멈추어야 합니다.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우물을 막아버리는 이 블레셋 사람들과 이 땅에서 동거해야 합니다. 그 어떤 믿음의 사람들도 편안하게 이 땅을 지내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영적 싸움과 관련하여, 우리가 몇 대 째 신앙의 계보를 이어가고 있는지 헤아리는 것은 쓸데 없는 일이며 근거 없는 허상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사명이 있고, 이 사명의 자리에는 또한 대적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가 하나님의 모든 깊은 뜻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하나님께서 이 악한 영들의 활동을 허락하셨습니다. 마귀가 하나님의 백성들과 싸우는 일을 멈춘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습니다. 우리는 소위 기독교 사회, 혹은 기독교 시대라는 말을 조심스럽게 이해해야 합니다. 인류 역사에 가장 기독교 시대라 할만한 시대는 중세시대 유럽사회였지만, 우리는 바로 그 시대가 가장 어두운 시대였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어떤 사람이든 영적인 싸움을 마친 사람은 없습니다. 능력이 큰 사람이든 작은 사람이든 이제 막 예수님을 영접한 새신자이든 오랜 세월 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한 지체이든 우리는 모두 우리의 사명의 자리에서 아브라함과 이삭처럼 계속해서 우물을 파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달려가야 할 길

혹, 우물이 막혔습니까? 원수 마귀가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한 삶의 생기가 마르고, 교회가 영적으로 압박되는 날들을 우연이라 생각하며,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질 것이라 막연하게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우리의 대적 마귀는 결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참된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의 샘물을 잘 먹고 마시도록 놔두지 않습니다. 항상 틈만 나면, 이 은혜의 우물을 매우고, 교회를 침체시키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유혹합니다. 우리가 넘어진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의 샘이 말랐기 때문이 아닙니다. 물길이 마른 것도 아닙니다.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의 샘물이 우리의 삶의 자리에 흐리고 있습니다. 단지 악한 마귀와 우리의 죄와 정욕이 이 은혜의 근원을 덮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해서는 안 되며, 자포자기 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마귀가 끊임없이 덮어버린 우물의 흙을 파내고 쓰레기 더미를 치워 하나님의 은혜의 샘을 다시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진리>

어쩌면 여러분들은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목사님, 특별히 교회 공동체 전체가 뜨겁게 타오르고, 복음의 능력이 힘있게 역사하던 부흥의 시대가 있지 않았습니까?” “오래 동안 믿음으로 살았던 부모로부터 어렸을 때부터 말씀을 배운 사람들과 저는 너무나 다릅니다.” “어떻게 우리가 동일한 싸움을 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이러한 질문의 의미와 이런 고민 가운데 있는 분들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여러분들이 과연 마귀가 막는 그 영적인 우물이 무엇인지 분명히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마귀가 막는 것이 무엇입니까? 마귀는 교회가 이 땅에 세워지지 못하도록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그는 부동산 업자들을 장악하여 교회가 일반 상가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거나, 새로 개발된 땅의 가장 후미진 곳에만 교회 설립을 허가하고 있습니까? 마귀가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마귀는 코로나로 인하여 여러 기업과 단체가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지만, 교회는 보조 받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까? 신천지는 지금도 우리 나라의 굴지의 언론사들은 물론이고, 지방 신문까지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 자기네 단체를 홍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런 자금력도 없고, 그러한 조직력도 없지 않습니까? 물론, 저는 이러한 일들이 마귀의 사역과 아무런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 사역의 본질이 이런 것에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개울이 마르면 꽃이 시드는 법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마른 땅에 꽃을 심어야 합니까? 우물을 다시 파야 합니까? 다시 물이 샘솟는 땅이 되면, 꽃은 피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마른 땅에 꽃을 심은들 그 꽃이 며칠이나 가겠습니까? 우리가 싸워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도 세력을 규합해서 어떤 정치 세력이나 아니면 경제 단체에 줄을 대야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바른 교리를 회복하라!

마귀가 쏟아 부어 막아버리는 은혜의 샘은 곧 하나님께서 교회에 허락하신 진리의 샘입니다. 최근 교계에 꽤 이름이 알려진 유명인사들은 앞으로 교회가 사회적인 신뢰성을 회복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처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에는 열심히 모이는데, 사회에서는 정직하지 못하고, 편협하다는 것이죠. 당연히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는 열심히 하고 기도는 뜨겁게 하면서 세상에는 엉망으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제가 볼 때, 이렇게 주장하는 분들은 오직 이 하나의 진리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교회에 대한 사회적인 신뢰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입니까? 이것이 정말 현대 교회에 필요한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악한 마귀가 예전부터 지금까지 교회의 생명을 마르게 하기 위하여 덮어버린 생명의 우물은 진리의 샘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구약의 이 사건은 진리의 샘을 덮어버림으로 교회의 생명력을 단절시키려는 마귀의 시도를 구약의 배경에서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이 땅 가운데서 능력을 상실하게 될 때, 우리가 물어야 할 최우선의 질문은 어느 때에나 진리에 관한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진리를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정말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고백했던 그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를 위하여 그 아들을 아끼지 않고 보내주신 그 자비하시고 우리의 모든 삶을 준비하시는 그 아버지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이 아버지 하나님을 인하여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와 감사함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날마다 담대히 나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분임을 알고 있습니까? 오직 그 안에만 그를 믿는 믿음 안에만 ‘칭의’와 ‘성화’의 능력이 있는 것을 확신하십니까? 오늘날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외에도 얼마든지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그리스도인은 없습니까?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오직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칭 그리스도인들이 상당수입니다.

우리는 살아 계시고 지금도 여전히 거룩한 주의 백성들 가운데서 일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까? 단순히 성령께서 우리가 구원받을 때 우리의 영혼 깊숙이 역사하신 어떤 능력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까? 우리는 참으로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데 부인할 수 없는 그 확실함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그 성령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까? 두려움에 떠는 사도들에게 담대함과 지혜를 주시고, 바울이 아시아로 가려고 할 떼, 마케도니아로 부르시고, 빌립을 에티오피아 내시에게로 인도하며, 교회의 일꾼을 세우시고 능력을 주시며 선한 길로 인도하여 주신 그 성령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까?

과연 우리는 이 삼위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고, 얼마나 큰 약속을 받았는지 인식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까? 과연 우리는 우리의 더러운 죄와 부패한 성품을 인하여 하나님께 통곡하며 기도하고, 정결한 마음을 얻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지체 여러분, 우리는 이러한 질문들 앞에서 무엇이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정말 하나님을 너무 사랑하고 있지만, 가족들이나 직장에서의 책무는 내팽개치고 있습니까? 정말입니까? 저는 그 동안 수십년 교회를 섬겼고, 목회도 20년 하고 있는데, 단 한 번도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데, 이 세상에서는 예의 없고, 거칠고, 게으르고, 정직하지 못한 사람은 보지 못했습니다. 교회 안에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가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사랑할 만큼 충분히 사랑하지 못하고 있는데 있습니다. 특히 현대 사회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에 대해 이전의 그 어떤 시대보다 더욱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도무지 하나님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면하고 하나님 앞에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여, 이러한 삶의 가치마저 존중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대면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교회에 허락하신 가장 큰 축복이며, 우리의 영적 샘물이요, 우물입니다. 마귀는 이 우물을 계속해서 덮을 것이며, 따라서 우리는 이 우물을 뒤덮은 흙더미를 계속해서 걷어내야 합니다.  여기에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 있습니다.

<힘써 지키라>

잠언 4장 23절에 지혜자는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증거합니다. 4장 7절에서도 “지혜가 으뜸이니, 네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바쳐서라도 명철을 얻으라.” 명령했습니다.

지체 여러분, 이 한 주간도 거룩한 진리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서 항상 샘솟도록 하십시오. 이 샘물이 우연히 막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영적 싸움에 대해 눈을 뜨며, 여러분이 지키는 그 어떤 것보다 이 진리의 샘을 더욱 힘써 지킬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을 이 땅의 ‘우물’로 인도하시고 지키셨던 것처럼, 저와 여러분에게는 이 영혼의 우물을 통하여 함께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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