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변곡점에 이르렀을 때>

*왜 우리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 마가복음 6장의 내용을 기억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마치실 무렵이 되었을 때, 제자들을 이스라엘 각 지역으로 파송했고, 제자들은 이 때 많은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6장 12절과 13절을 보면,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고 복음을 선포했고, 많은 귀신들을 쫓아내며 수많은 병자를 고쳤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로부터 얼마 이후,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오르셨을 때, 제자들은 한 아이가 귀신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보고도 도무지 아무 능력을 나타내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은 적잖이 당황하고 난처했습니다. 이스라엘 전체를 돌아다니며 수많은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한데, 도대체 그 능력이 지금은 어디 있는 것입니까? 도대체 얼마 전에 그들이 나타냈던 그 능력은 어찌 된 것입니까? 이들이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고 있을 때, 다행히도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셨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귀신들인 내 아이를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쫓아내 달라고 했지만, 그들이 하지 못했습니다.” (9:17-18)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 아이를 내게 데려오라 말씀하시고,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말씀하시며, 악한 귀신을 꾸짖고, 그 아이를 고쳐주심으로 아이의 아버지는 주님께 감사하여 돌아갔습니다. (9:19-27)

그러나, 아이가 고침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에게는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은 사람들이 떠나고 난 이후, “우리는 어찌하여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이렇게 질문하였습니다. 이 질문의 의미를 이해하시겠습니까? 제자들은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얼마 전에 이들은 놀라운 역사를 이루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이번에는 실패한 것입니까? 이것이 제자들의 질문입니다.

*피할 수 없는 신앙의 변곡점

우리는 이 제자들의 질문에서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경험하는 피할 수 없는 신앙의 변곡점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지금 여러분의 신앙이 날마다 성장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지금보다 더 성장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우리의 믿음이 정체하고 있지 않습니까? 분명히 이전에는 교회에서 예배할 때에 큰 은혜와 감동이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똑같이 예배하지만, 더 이상 우리 영혼의 울림이 멈추지 않았습니까? 도대체 왜 분명히 자라나던 우리의 믿음이 더 이상 자라지 않는 것입니까? 우리가 과거에 경험했던 그 영감과 감동은 어디로 간 것입니까? 이것이 바로 본문의 제자들이 묻는 질문이며, 신앙의 변곡점을 지나는 모든 성도들의 고민입니다. 더욱이 저는 이 문제가 특별히 이 시대 이 나라에서 교회를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공동체적으로 해쳐나가야 할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교회와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영향력 있게 일하던 시절을 지나왔습니다. 저는 주일학교 다닐 때, 교회에 대한 이런 저런 불평과 비난이 우리 사회에서 조금씩 일어나고 있을 때, 주일학교 교사 선생님이 하얀 종이에 작은 점을 찍어서 보여주며, 교회가 너무나 거룩하고 정결하기 때문에 소수의 사람들이 저지르는 비행이라도 아주 심각하게 보인다고 가르치셨던 일을 기억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서 성도들의 영향력을 인정하고, 목회자의 거룩성을 신뢰했던 때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이 시대가 완전히 지났음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교회에 대해 분노를 느끼는 사람들이 60%나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 통계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사회 구성원이 교회에 대해 혐오심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도대체 이 달라져버린 상황, 마치 영적 침체의 늪에 빠진 것 같은 날 가운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영적 싸움에서 어떻게 승리할 수 있을까?>

*우리의 대적 악한 마귀

무엇보다 저는 여러분들이 우리의 대적 원수 마귀의 실재를 인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기 제자들이 당면한 영적 현실의 한 복판에 악한 마귀가 그 정체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마귀가 이 아이를 사로잡고 있었기 때문에, 제자들이 고민한 문제는 결국 악한 사단과의 싸움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비록, 이 시대에 우리의 대적 악한 마귀는 예전처럼 몇몇 사람들의 이성을 사로잡아 그들을 불이나 물로 뛰쳐들게 하는 방식으로만 일하지 않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 원수 마귀와 그의 나라를 맞서 싸워야 함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악한 마귀가 우리와 같은 인격체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우리는 이 영적 대적자를 나무나 돌멩이처럼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귀는 우리와 같이 살아 있는 변화무쌍한 존재입니다. 그는 많은 졸개들을 거느리고 있는 악한 나라의 수장이며,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을 위협해 왔습니다. 마귀에게는 교회사 전체에 대한 지식이 있습니다. 마귀는 교회를 어떻게 무너뜨려야 할지를 날마다 생각하고, 어떤 경우에는 정말 강력하게 한 시대와 사람을 붙들기도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전에 이 악한 세력과의 작은 싸움에서 승리했다고 해서, 거기에 도취되어서는 안 됩니다. 엘리야 선지자를 생각해보십시오.

그는 바알와 아세라를 좇는 선지자들과 그들을 후원하는 이스라엘의 왕 아합과 이세벨을 맞아 아주 오랜 싸움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갈멜산에서 치열한 영적 전투와 승리를 경험한 이후, 극도로 피곤하여 큰 영적 위기를 맞고 말았습니다. 그는 그 영광스러운 승리를 하고 나서 로뎀나무 밑에서 그의 영혼을 하나님께서 취하여 달라고 간구하지 않았습니까? 다윗은 어떻습니까? 그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많은 싸움에서 승리한 이후, 밧세바 사건으로 하나님께 큰 죄를 짓게 되지 않았습니까? 이 세상 전쟁에서와 마찬가지로 영적 전쟁에서도 가장 위험한 것이 영적 방심입니다.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았는데, 우리 마음대로 이제 우리가 승리의 날에 이르렀고, 영적 전쟁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싸움을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왜 우리가 낙심합니까? 혹 여러분이 낙심했다면, 어느 정도 믿음의 싸움에 대해서 스스로 결론을 내렸기 때문은 아닙니까? 이제 이 정도면 되었지 하는 그 순간 이전보다 더 큰 영적 대적을 만나게 될 때, 우리는 크게 낙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우리가 공동체적으로나 혹은 개인적으로 맞고 있는 이 신앙의 굴곡에 놀랄 때가 아니라, 아직 우리 싸움이 끝나지 않았음을 인정해야 할 때인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더 크게 넘어뜨리려고 작은 시험에서 일찍 물러 갈 수도 있는 간교한 존재입니다. 과거의 승리는 과거에 남겨두시고, 우리의 달려갈 길에 남은 믿음의 싸움에 정진하시기를 바랍니다.

* 이 싸움은 영적 싸움이요, 영적 전쟁이다!

두 번째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이 악한 대적자와의 싸움을 실제적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영적 전쟁에는 영적 무기가 필요하니, 영적인 전쟁을 하는데 자꾸 육적인 무기를 들고 오지 마십시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최신 영상 장비가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 나라에서 아주 영향력 있는 사람이 교회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기도입니다. 곧, 지금 우리에게는 하늘로부터 임하는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지금 영적인 전쟁 중에 있으니, 영적인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영적인 능력은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참으로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로 인한 거룩한 기쁨이 있어야 하며, 그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능력으로 임재하시고, 우리를 사용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그리고 교회에 그리고 이 역사 가운데 살아계셔서 당신의 약속을 이루고 계시는 그 하나님을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얼마나 우리를 위하여 일하시는지 분명히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영적 사대주의를 버리고, 진정한 영적 능력을 구비하라!

마지막으로, 우리가 바로 이 때 반드시 영적 사대주의를 떨쳐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 우리는 안 되었습니까? 이 질문은 아주 유용한 질문입니다. 안 되는 것을 붙들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정말 영상 장비나 유명하고 유력한 사람들이 교회로 나오는 것입니까?

정말 그것이면, 메말라버린 우리의 영혼과 교회의 영적 능력이 회복되는 것입니까? 저는 현대 교회가 가지고 있는 매우 큰 질병이 다름 아닌 영적 사대주의라고 확신합니다. 몇 년 전에 우리 나라에서 꽤 존경받은 전 장관이 유명한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을 때, 많은 사람들이 굉장한 일이 일어난 것처럼 떠들썩하게 요란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 분이 인터뷰한 내용을 읽어보니, 이 분이 이 세상의 철학과 문학에 대해서는 굉장한 지식이 있을지 몰라도, 성경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교리에 대해서도 전혀 이해할 준비조차 되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사람들이 놀란 것이 무엇입니까? 이 분이 탁월한 영적 지식과 거룩한 능력을 나타냈기 때문입니까? 오히려 이러한 분들의 화려한 이력 때문 아닙니까? 우리는 영적인 변곡점에서 어떤 사람의 학벌이나 유명세를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그의 훌륭한 인격이나 평판을 붙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것이 바로 영적 사대주의이며, 지금 이 시대 우리가 가장 시급하게 극복해야 할 영적 병폐입니다.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에게 찾아왔을 때, 엘리사가 문 밖에 나와 보지도 않고, 요단강에 가서 씻으라! 하였습니다. 자존심이 강했던 나아만 장군이 이렇게 나를 멸시할 수 있는가 하여 돌아가려 했지만, 그의 종들이 그를 만류하였습니다. 당신은 여기 선지자의 얼굴을 보로 온 것입니까? 아니면 살려고 온 것입니까? 선지자가 이보다 더한 요구를 하였어도 순종하였을텐데, 하물며 들어가서 씻으라 하는데, 못할 것이 무엇입니까? 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위하여 간청하는 수로보니게 여인에게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에게 주는 것이 마땅하지 않다.’ 하였을 때, 수로보니게 여인이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주여 옳습니다. 그러나 개들도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과 그와 같은 맥락입니다. 기도외에는 이런 류의 역사가 없다고 했습니다. 어떤 고대 사본에는 기도와 금식 외에는 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허례 허식을 버리고, 도움이 되지 않는 다른 모든 것에 관심을 끊고,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구하라는 것 아닙니까? 이것이 바로 우리 모두가 지금 해야 할 일입니다. 사랑하는 지체 여러분, 여러분이 학교에 가서 영어 시험을 본다면, 열심히 단어를 외우시고, 문법을 공부하십시오. 그러나 여러분들이 교회에 와서 거룩한 능력으로 교회를 세우기 원한다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신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시고, 자비하신 하나님께 기도하여 성령을 받으십시오. 영적 전쟁에는 영적인 능력이 필요하니, 영적 사대주의를 버리고, 진정한 영적인 능력으로 충만함을 준비하십시오.

결론.

사랑하는 지체 여러분, 우리가 이 땅을 나그네로 살아감을 기억하십시오. 나그네의 승리는 이 땅을 잘 지나가는 것 아닙니까? 나그네는 그가 지나가는 땅에 영원히 머물 곳을 남기지 않습니다. 그는 그저 지나가야 할 땅을 지나감으로 만족할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승리입니다.

한 해 동안 여러분이 어렵고 힘든 형편에서도 믿음을 잘 지키셨으니, 이미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임한 승리가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하나님께서 이 한 해 동안 더욱 기도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여러분에게 더 큰 믿음을 주셔서, 더 큰 사명으로 감당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영적 푯대를 기억하시고, 달려갈 길 달려갈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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