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절 : 오순절 성령 강림>

*오순절

먼저, 1절은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라는 구절로 시작되는데요, 여기 ‘오순절’이라는 시기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순절은 유월절이 끝난 이후 50일째 되는 날로서, 유대인들은 이 때 밀수확을 시작하는데, 밀이 유대인들의 주식임으로 오순절은 유대인들의 추석과 같은 명절인 셈이죠. 유월절이 보리 추수가 시작되는 시기임으로 유월절부터 오순절은 이스라엘 백성의 보릿고개라고 생각하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즉, 오순절은 척박하고 곤궁한 형편에서 벗어나, 일년 중에 가장 풍성한 시기가 시작되는 큰 기쁨의 절기입니다. 그런데, 출애굽기를 조금 자세히 보면, 이러한 절기들이 단순히 곡식의 수확만을 기념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처음 나온 날이 유월절인데,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율법을 받은 때가 언제입니까? 출애굽기 19장을 보면, 세번째 달 넷째날이니까, 유월절 이후 49일째 날, 오순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보리 추수가 시작되는 유월절에 애굽에서 나와 밀추수가 시작되는 오순절에 율법을 받았습니다. 마치 아이를 잉태하면 10개월이 지나 출산하는 것처럼,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제 막 부름 받은 때이며, 오순절은 이들이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함으로 온 세상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포된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서의 저자들은 예수님의 사역에서도 이 절기들이 아주 의미심장하게 재현되었음을 강조합니다.

 우선, 그리스도께서는 유월절 전날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자신이 유월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의 문설주에 피를 뿌린 어린양 되심을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이 지난 첫날 애굽에서 나온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유월절 이후 첫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이 말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모세가 유월절 다음 날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50일간 인도하여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아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나라로 선포한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유월절 이후 무덤에서 부활하시고, 50일 이후 곧, 오순절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 새로운 이스라엘을 설립하셨습니다. 2절과 3절을 보십시오. 이들이 성령을 받을 때,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소리가 나고, 온 집안이 불에 타는 것 같은 환상이 보였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이 무슨 사건인지 아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선포하실 때, 시내산에 구름과 바람과 불과 천둥이 있지 않았습니까? 바로 그와 같은 일이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50일이 지난 오순절에 다시 여기 마가의 다락방에서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약 교회의 본질 : 성령의 공동체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보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신약교회의 본질입니다. 우리는 오순절주의자들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오순절 성령 강림의 역사가 신약 교회의 기초임을 결코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오순절 성령 감림의 역사는 신약 교회가 최초로 출현하는 현장으로서, 하나님께서는 이 역사를 통하여 신약 교회의 정체성을 분명히 계시하셨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의 역사는 이제 하나님 나라의 섭리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율법의 시대가 종결되고, 성령의 시대가 개시되었음을 알리는 표지와 같습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개막식이 여기 있으니, 이 오순절 성령 강림의 사건으로 인하여 율법의 옛 시대는 지나고, 성령의 새로운 시대가 온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본문을 통하여 오순절교회와 장로교회의 차이점에 부각하는 것은 넌센스입니다. 오히려 저로서는 이 본문은 오순절교회와 장로교회의 공통점을 더 강조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곧, 그리스도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신약교회는 성령의 공동체이고, 성령께서 함께 하시고, 다스리시고, 도와주시고, 역사하시는 성령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이제 신약 교회는 혈통 공동체도 아니고, 율법 공동체도 아닙니다. 우리는 어떻게 교회를 이루고 있습니까? 성령 공동체입니다. 스가랴가 환상 가운데 보았던 것처럼,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두르는 벽이 되시고, 성이 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부어지는 이 성령께서 하나님의 영, 곧 삼위일체의 제 삼위가 되시는 살아 계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으로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교회는 교회가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지체들은 다 같은 마음으로 성령을 추구해야 하고, 성령을 기다려야 하며, 성령으로 행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시대의 교회는 존재할 능력도 힘도 상실하며, 우리는 그러한 공동체에 미련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순절주의자는 성령을 강조하고, 장로교는 말씀을 강조한다는 이상한 구분에 결코 동의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장로교인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붙들겠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그만큼 우리는 또한 성령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신뢰하고 사모해야 합니다. 장로교회든 칼빈주의든 개혁주의든 교회 안에 성령께서 임재하시지 않는다면, 그것은 교회라 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성령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4절 : 방언 – 영적 균형>

*바벨 저주의 회복

4절을 보십시오. 이들이 이 큰 성령의 역사를 받았을 때, 이곳에 모인 120명의 지체들은 각 나라의 말로 하나님의 큰 일을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어떤 사건인지 아시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여기 이 초대 교회의 성도들의 입술에서 터져 나온 방언은 창세기가 증거하는 바벨탑의 저주가 회복되는 사건입니다. 바벨탑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인간이 이 땅에서부터 하늘로 쌓아 올린 제단 아닙니까? 인간의 힘과 능력을 자랑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는 이 세상의 문화 아닙니까? 이것은 거짓 종교이며, 태초의 에덴 동산을 모방했지만,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거짓 에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대항하여 높이 올려진 이 제단을 저주하심으로, 모든 사람들이 함께 모여 하늘에 오르려 했던 그들의 자랑을 꺾으시고, 이들을 온 세상을 흩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 운명의 청사진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이제 여기 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고,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붙드는 이 교회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을 부어주셔서, 이들에게 하늘 영광을 허락하셨습니다. 바벨의 사람들이 그렇게 이루고자 했던 영광의 나라가 여기 회복된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제단, 곧 야곱이 보았던 그 하늘 사닥다리가 내려온 것입니다.

 *인본주의를 넘어서자!

지체 여러분, 교회는 결코 사람들이 어떤 몇 가지 선한 목적을 가지고 모여서 우리의 능력과 지혜를 짜내서 과업을 추진하고 성취하는 기관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순절이든 장로교이든 우리가 교회를 섬기며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우리가 이 교회를 사람들의 모임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에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타락, 혹은 목회자들이나 교회 중직들의 탈선을 마음 아파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이러한 문제들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개혁해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의 존재 목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조금 존경받는 품성이나 행실을 이루는데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교회의 정체성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또 하나의 바벨탑이요, 거짓 에덴이 될 뿐입니다. 지체 여러분, 우리의 영광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대신하려는 욕망이 바로 사단의 가장 깊은 중심임을 잊지 마십시오. 이 유혹은 매우 은밀하지만, 너무나 강력하고, 실제로 교회 안에서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 뿐 아니라, 심지어는 자기의 영광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가리는 바로 그 행위를 자기 자랑으로 삼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자가 천국에 가기가 낙타가 바늘 구멍으로 지나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실제로 주의 영으로 감화시키고, 변화시키며, 그들의 마음에 강 같은 평화, 바다 같은 사랑, 샘 솟는 기쁨을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하시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때로는 이 기쁨과 감격이 너무나 커서 세상 사람들이 이런 반응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저 교회 교인들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교회만 갔다 오면 우리가 알아 들 수 없는 기쁨이니 평안이니 구속이니 이런 소리를 떠들고 다닌다.’

이 초대교회의 지체들도 사람들로부터 너희가 ‘낮부터 술에 취해 있구나’ 하는 조롱을 받지 않았습니까? (2:13) 이 세상의 사람들은 교회를 보지만, 교회를 알 수는 없습니다. 교회에는 이 세상이 결코 알 수 없는 그 은혜와 평강을 맛보는 기쁨과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교회의 능력은 세상이 이해할 수 없겠지만, 부정할 수 없는 영광으로 이 땅 가운데 나타날 것입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라!

그러므로 저는 우리가 참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앙망하는 능력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번 신년 예배를 통하여 기도가 우리의 소원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우리보다 더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씀을 나누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믿는 바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의 능력을 요구하시는 분도 아니시고, 우리에게 당신의 부족함을 채우라 명령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이유는 우리가 능력 없는 하나님을 돕기 위함이 아니라, 능력 없는 우리가 하나님으로 인하여 능력을 받기 위함이 아닙니까? 도대체 우리 중 누가 하나님을 돕기 위해 나설 사람이 있습니까? 사랑하는 지체 여러분, 혹 여러분들이 주 앞에 살아가시다가 몸이 아프고 마음이 힘들 때, 너무 힘들어서 주 앞에 나오지 못하겠다고 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그렇게 약하다면, 우리는 더욱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꾸 인간적이 되려고 하면, 우리는 사실상 비인간적이 되고 마는 이 삶의 역설을 잊지 마십시오. 주를 위해 죽고자 하면 살 것입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주께서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가는 것 같은 새 힘을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며 느끼는 한 두 가지 기쁨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이유와 목적과 삶의 원동력이 되시는 성령을 부어 주실 것입니다. 왜 우리가 꼭 그렇게 맑은 공기를 마셔야 하느냐고 묻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원래 사람은 상쾌한 공기와 파란 하늘빛 아래서 몸과 마음이 소생하는 존재로 지음 받았습니다. 진정 우리가 사람 답게 살고자 하신다면, 이 세상의 사람들이 만들고 자랑하는 그 허망한 것 들에서 우리의 삶의 본질을 찾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나아와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시며, 그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어 주시는 그 놀라운 평강과 기쁨을 소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령 받은 사람은 이 세상의 그 어떤 사람과도 비할 수 없고, 성령이 임한 교회 역시 이 세상의 어떤 인간적인 모임과도 비할 수 없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 참으로 성령 안에서 행하는 참된 교회가 되어,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 그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성령의 능력을 이 땅 가운데 나타내는 빛과 소금이 됩시다.

 *영적 균형

우리는 이 거룩한 영에 대한 사모함이 있습니까? 우리가 성령의 공동체가 되기를 참으로 원하십니까? 우리 안에 이 세상의 사람들이 결코 없는 그 놀라운 평안과 위로가 있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셔야 합니다. 이들은 모두 함께 전혀 기도에 힘썼다고 하지 않습니까? 120명 전체가 기도했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러한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참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성경이 증거한 그대로 믿는다면,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오사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사, 우리를 위한 의를 이루셨음을 믿는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약속하신 성령을 힘써 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신 약속이며, 우리는 이 약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적 균형을 발견합니다. 무엇이 균형잡힌 성도의 삶입니까? 온 힘을 다해 하나님의 나라를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이 성령의 부어짐을 모든 힘을 다해 사모하고, 항상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 영적 균형입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쉬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성도가 추구해야 거룩한 삶의 균형이니, 이 한 주간도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지체 여러분, 애당초 우리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모든 것 되심을 증거하는 사명을 받았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은 전혀 기도에 힘썼고,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의지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들을 사용하셨습니다. 이것이 초대교회가 가진 능력의 근원이고, 전부였습니다. 여기에 교회의 정체성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와 같은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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